핸드폰으로 고통받았던 이유
어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핸드폰을 겨누고 있길래
"핸드폰방향좀 옆으로 옮겨주세요. 저한테 겨누는거같애서 기분이 안좋아서요" 라고 말하니
옆에있는 아줌마가 너그럽게 웃으며
"사진 찍는거 아니에요^^" 라고 말한다. 이것이 일반 사람들의 이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참 고맙다. 일부러 사진을 찍는것이 아니라고 말해준것도
배려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의 확산은 행하는자와 당하는자 사이에 아무런 말이 없기때문에
더욱 확산된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준게, 아 저사람이 저렇게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걸
내가 알수 있지 않은가. 만약 저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다 짜고치면서! 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고, 고통스러운지 뻔히 알면서 일부러 저런걸 하는 인간들
이라고 밖에 이해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좁혀주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이 NLP(민감성프로그램)이 얼마나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지에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다. 아마도 소문이 나서인지 예전처럼 일부러 비꼬거나 미친사람 취급하거나 그런걸 하지않고
상당히 상냥하게 반응하는것도 타겟의 일상에서는 많이 발전한것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핸드폰을 겨누는 행위는 상당히 불쾌감이 느껴지도록 기억된다. 그렇게 기억을 시킨거다.
입에서 쯥쯥~ 소리는 내는거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특정한 행동을 불쾌감이 느껴지도록 많은 사람들이 (전부 각자 다른타인들이 전혀 다른장소에서)
기억 시킨다. 그러면 그 행동은 타겟에게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이상한 행동을
내 앞에서 벌이는것 그 자체가 이미 이상한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마트에서 어떤사람이 내 앞에서 볼펜을 딸깍 거렸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주차장에서 또 볼펜을 딸깍거리고 지나가고,
나는 상대방을 모르는데 상대방들은 나를 안다는듯이 공통적인 행동을 하는거다.
다음날 사무실에 갔더니 동료들이 돌아가며 볼펜을 딸깍거리고,
어딘가에 서류를 떼러갔더니 처음보는 거기 직원이 또 같은 행동을 한다.
전혀 모르는, 그리고 한군데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진 사회구성원들이
그런 행동 하나를 정해놓고 내 앞에서 그걸 벌인것이다.
(볼펜은 하나의 예이고, 나는 주로 소리나 핸드폰으로 많이 당했다)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것이다.
내가 알수없는 사람들, 하나의 집단에 노출되어있고, 그 사람들이 내게 어떤 불쾌감을 갖고
하나의 행동을 만들어내어 내 앞에서 연출한다. (이것도 상당히 시간이 지나 이정도나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고 이 사람들이 대체 뭐하는거지? 싶어서 망연자실해했다)
그것은 하나의 공격이 되는것이다.
그렇게 느끼고 있을 즈음에 이 동영상을 입수했다. 그리고 너무나 똑같은 현실에 기가 막혔다.
내가 느낀 심리적 위압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것인지 너무나도
알고싶었지만 자료를 별로 찾을수가 없었고, 뭔가 당하고 있는데 그걸 설명할수가 없다는것은
정말 참담했다.
나는 그게 뭔지 너무나 알고싶었다.
무턱대고 어떤 다른 세상에 내던져져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나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내 앞에서
그런 행동들을 하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를 않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 맨붕이었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입수해서 아 이게 이런것이구나 라고 정의 할수 있었을 때,
또 하나의 숙제가 눈앞에 놓여져 있었는데, 그것은 나는 직접 당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것이고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것이라는 ' 기막힘 ' 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이 막막한 현실을 전달할수 있을까?
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가 된 기분을 누구에게 설명할수 있고
또 그것을 누가 믿어준단 말인가.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사진을 찍었다면 덜 고통스러웠을것이다.
어찌됐든 그것은 해결 방법이라도 있지 않은가. 신고를 하고 경찰을 불러서
사진이 찍혔는지 확인해보면 그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단 한장도 찍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사진을 찍기위해 그렇게 행동하는것이 아니라,
사회속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그 틈속의 나의 기막힘을 노렸던것이라는걸,
나는 그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은 내가 뭘 알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데 뭐가 고통스럽다는 말이야? 왜 징징거려? 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런 현실속에서 남모르게 나의 고통을 노리는 사람들과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철모르는 사람들은 그걸 ' 심리전 ' 이라고 이해하는듯 보였다.
나의 무고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것인냥 산산조각 나버렸고,
그 행위를 하는 교활한 사람들의 눈빛은 내게 이유없는 ' 유죄 ' 를 선고 한것이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핸드폰을 들고 내 앞에서 하는 행동은 하나의 ' 닻 ' 이 되는것이고,
그 사람들은 언제든 길거리든, 전철안이든, 공원이든, 마트이든
언제 어디에서이든, 가볍게 내게 지긋지긋하게 반복적으로 그걸 하면서 억지로 입력시킨
내가 싫어하는 행위를 마음껏 할수 있었다.
그것은 ' 방아쇠 ' 인것이다.
언제든 당기기만 하면 되는 총알.
그것을 법안의 테두리로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하여 몰아넣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 하다라는것을 인정해야했다. 그것을 그런 경험밖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것조차도 이렇게나 힘이드는데 어떻게 공론화를 시킨단 말인가.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화나는) 하나 처리하는데에만도 바빴다.
때에 맞춰 ' 분노조절장애 ' 와같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 평화롭게 살아갈수 있었던 누군가들이
' 분노조절장애 ' 로 몰리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이런 전문적인 방법들이 어떤 악의적인 집단에 의해 쓰여지고, 선량한 사람들이
알수없는 이유로 이런 방법들에 의해 분노하고 화가나는 상황,
그리고 그런것들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해는
저런 분노조절장애와같은 ,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관해 이해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범죄가 점점 ' 집단적 ', ' 기술적 ' 으로 변해가고 있고,
아니 이미 그런 중심에 나는 서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 그래서
터져나올수 밖에 없는 그런 고름과도 같이 썩을대로 썩어있는 거라고,
그러니 이제라도 모든방식에 있어서 이렇게 이해해야 함을.